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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페인 작가는, '아무리 허술한 구조로 쓰여진 상업적인 3류 대중소설일지라도 TV연속극 보다는 낫다.' 라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불변의 진리일 것 같은 훌륭한 지적을 해 주었는데, 그 진리가 (적어도) 자랑스런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이미 통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다. 3류 대중소설보다도 못한 TV연속극이 있다면 TV연속극보다 못한 소위 '귀여니 소설' 이란게 존재하며 그것이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참혹한 이야기를 듣고나서 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그 '귀여니 소설' 에 대한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참기 힘든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귀여니 소설이란,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지나치게 자유로워서 맞춤법 지키기를 거부하고 이모티콘을 남발함) 씌여진 인터넷 소설들 중에서 '이윤세' 라는 10대 여학생이 쓴 소설들을 비롯한 그런 부류의 소설들을 이르는 말이며 '귀여니'는 이윤세라는 여학생의 필명이다. 물론, 이 '귀여니'가 쓴 소설들은 모두 책으로 출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가장 걱정스러운 미래인 현재의 10대 여학생들이 대부분의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2,30대에서도 간간히 이 책을 열성적으로 읽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저속하고 도움 안되는 문화는 가장 먼저 찾아다니고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내세울만한 특성으로 갖고 있다는 현재의 대한민국 10대들에게 또하나의 지저분한 병이 돌고 있는 것이다.

귀여니 소설을 사실 '소설' 이라고 표현하기도 수치스럽다. 일단, 작가의 시점이라는게 아무런 규칙이 없다. 모든 시점을 자기 마음대로 골라다가 갖다 붙인다. 물론, 최소한의 상황설명도 대부분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제도 없고, 문학의 기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장르의 하나인 '소설' 을 사칭한 어린애 낙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써놓고 본인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난 '귀여니' 라는 나름의 필명도 갖고 있는 순수한 망상에 빠져있는 어린 여학생을 욕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것은 아니다. 그 배운것도 없고, 많은 책을 읽었을 것 같지도 않은 어린 학생이 인터넷상의 하위문화를 형성하여 그 안에서 신나게 헛된 꿈을 꾸고 있는것 까진 별 문제가 없으며, 상관할 바도 아니었다. 문제는 돈을 벌어 쳐 먹으려는 욕심으로 그 위험하고 추잡한 것을 출간해 낸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들이다. 그들은 안그래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주 곪아서 썩어버려도 상관없다.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아무런 음악성도 없을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개념조차도 불확실한 무능하고 배운거 없는 청소년들에게 왠만한 미모나 개성만 발견되면 데려다가 가수 시켜준다고 억지로 컴퓨터 음악 만들어 음반 만들고 듣기에도 역겨운 가명이나 팀명으로 TV에 나와서 쇼하게 해놓으면 금새 천박한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것은 돈이 목적이고,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음악들은 그 청소년들에게 있어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좋은 음악' 이 되어버린다는게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지금 귀여니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서도 그런 낙서 수준의 글을 소설로 여길까봐 그 또한 새로운 두려움이 되고 있다.

이번엔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슬픔을 얘기해보겠다. 귀여니라는 아가씨의 대표작들을 원작으로 한, 듣기만 해도 역겹기 짝이 없는 타이틀을 단 영화가 한편도 아닌 두편이나 제작되었다. 그리고 개봉한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태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영화를 기획한 또라이는 누구며, 기껏 영화감독이 되어서 이런 영화나 찍고 자빠진 막장 감독은 또 누군가! 그리고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지금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야만 하는 나 자신이 정말 싫다. 물론, 모든 원인은 '돈'이겠지만 영화인들 만큼은 그래도 최소한의 이성은 갖추고 있을 줄 알았다. 귀여니 소설로 통용되는 그 초저질 문화가 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곧 대중문화가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또한 미쳐버릴것 같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런 것을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고있는 일부 생각없는 여대생들이나 주부는 차치하더라도 청소년들이 그런 것을 읽으면서 자란 후가 나는 정말로 정말로 걱정스러워 돌아버릴 지경인데, 그런 것을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직접 써놓고 책으로까지 출간되어 스스로를 유명 작가쯤으로 여기고 있을 '귀여니' 를 특별전형으로, 그것도 나랏말을 그 어느 학교보다도 소중히 여겨야 할 성균관대학교에 입학시킨 아이러니를 저지른 작자는 또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한없이 망가져있는 한 여학생을 옳바른 나랏말의 길로 인도해 보고자 하는 심산이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여학생으로 인해 희생되어야 하는 정말로 나랏말을 사랑하고 옳바른 문학의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선량한 학생이 너무나 불쌍하지 않은가...

'귀여니 소설'...... 이건 분명한 오류이며, 심각한 잘못이다. 이런 최악의 악취나는 산물이 우리 주변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크나큰 불행이라는 사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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