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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TIME - TimeFrames by LEV GROSSMAN (2010.11.24)

번역 : casaubon (애플포럼)


10년 전, 네 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바꾸었다. 그 수단은 총이나 법, 혹은 돈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였다. 이들은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코드를 작성하였으며, 이 코드를 인터넷에 무료로 풀었다. 이 네 명의 젊은이는 아무도 대학을 마치지 않았고, 우리가 현재 거주중인 디지탈-미디어 환경의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 모든 의도와 목표를 이루고나자, 이들은 사라졌다.

1999년, Northeastern University의 신입생 숀 패닝(Shawn Fanning)은 P2P 파일공유의 개척자인 냅스터를 작성하였다. 냅스터는 소매점, 기획사 없이 미디어를 소비하게 해 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본지도, 포천지도 그를 표지인물로 장식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같은 해, 노르웨이의 10대 청소년이었던 욘 레크 요한센(Jon Lech Johansen)은 두 명의 다른 프로그래머와 합세하여(그 둘의 이름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상용 DVD의 락을 풀어버리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였고, 곧이어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DVD Jon"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1997년, 애리조나 주 Sedona에 사는 18살의 해커, 저스틴 프랭클(Justin Frankel)은 무료 MP3 플레이어인 WinAmp를 작성한다. WinAmp는 윈도 머신의 필수 프로그램이 되었고, 디지탈-음악 혁명을 이끌어냈다. 처음 나온지 18개월만에 1,500만 명이 WinAmp를 다운로드받았다. 3년 후 프랭클은 P2P 파일공유 프로토콜인 Gnutella를 작성한다. Gnutella는 냅스터와는 달리 끌 수가 없으며, 지금도 수 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2001년, 당시 26세였던 브램 코헨(Bram Cohen)은 BitTorrent라는 P2P 파일공유 프로토콜을 작성한다. BitTorrent는 우아하고 새로우면서도, 대용량 파일에 특화된 구조였다. BitTorrent는 인터넷을 통한 대용량 파일 공유의 표준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본지는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 당시 이들은 모든 미디어-오락 업계를 뒤흔들고 다시는 영화와 음악, 텔레비전에 돈을 낼 수가 없게 만들 것처럼 보였었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대가를 받을 수 없고, 대규모 연예오락사들(Time Warner도 포함된다)은 폭탄을 맞은 것이었다. 미국 기업세계에 해적들이 출몰한 것이기도 했다. 2003년, 본지는 이렇게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보가 무료인 정보경제가 생겨날 수는 없다." 실제로 종말이 오고 있다면, 그 주역은 패닝과 요한센, 프랭클, 코헨, 이 네 명이었다.

Apocalypse Not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락 산업에 변화가 왔을 뿐이다. 하지만 기대치보다 훨씬 복잡하고 점진적이었다. 당장 디지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 해적 왕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아보는 편이 좋다. 패닝과 요한센, 프랭클과 코헨 모두 작지만 합법적인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해적질을 실제로 벌였다 친다면, 해적질을 이제 멈춘 것이다. 

네 명 중 인터뷰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다. 패닝이다. 패닝은 미디어 사업을 일찍 떠났다. 2001년, 냅스터는 지적재산권 침해를 돕고 교사(abetting)했다는 소송 끝에 문을 닫았다. 2002년, 패닝은 새롭되 합법적인 파일 공유 서비스인 Snocap을 건립하였다. 심지어 음반사들의 협력도 있었다. Snocap은 고객들에게 다운로드한 작품을 소비할 힘을 주려 했었다.

그러나 당시는 무료 파일공유 프로그램이 급속도로 자라나고 있었고, 고객들 역시 하드드라이브의 음악 파일을 아무 대가 없이 공유하곤 했었다. 2001년 8월에만 30억 개 이상의 파일공유가 일어났으니, 여기에 돈을 붙였더라면 그 액수는 상상을 초과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공짜와 경쟁하기는 힘들다. 패닝은 자기 스스로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패닝은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Rupture라 불리우는 게이머용 소셜 네트워크였다. 그는 이 소셜 네트워크를 2008년, 1,500만 달러에 Electronic Arts로 팔았고(최초로 그가 꽤 받은 돈이었다), 현재는 11월에 발족한 아이폰 기반의 사진 공유 서비스인 Path를 운영하고 있다.

냅스터는? 존재하긴 존재한다. 냅스터 브랜드는 부도경매처리 되었다가 다시 팔려나갔지만, 관련성은 전혀 없다. 현재는 Best Buy가 "뮤직 스토어 그 이상(More than just a music store)"이라는 슬로건 하에 아이튠스 경쟁자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할 뿐이다.

The Pirate Who Wasn't

Gnutella의 저자로서 저스틴 프랭클은 패닝의 적법한 계승자랄 수 있지만 패닝과는 달리 초창기 때부터 돈을 벌었었다. WinAmp가 히트를 친 이후인 1999년, AOL은 WinAmp와 프랭클의 회사인 Nullsoft를 1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덕분에 프랭클은 AOL 직원이 된 동시에 대단히 부유한 20살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대단치는 않았다. Nullsoft에서 프랭클의 방식은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작성한 다음 무료로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AOL에서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자체를 판매가 압도하였다. 프랭클의 말이다. "제가 작업한 제품들은 대게 다 비슷비슷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죠. 다른 기업들과 계약을 맺으려면 제품이 결과로서 나와 주어야 했습니다. 사용자가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썼어요."

그동안 프랭클은 남는 시간동안 Gnutella를 작성하고 있었다. Gnutella는 순수한 배포방식이었던 냅스터와는 달리 중앙 서버가 없었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공유를 끄게 만들 재간이 없었다. 그는 Gnutella를 2002년 3월에 이렇게 올려 놓았다. "See? AOL can bring you good things!" 그러나 냅스터의 재발명때문에 AOL은 프랭클을 좋게 보지 않았다. AOL은 메이저급 미디어 기업, Time Warner와 합병을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Time Warner는 냅스터를 고소하고 있었다. 결국 프랭클은 2004년에 AOL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재밌는 일을 한다. 뭔가 만들어서 성공시키는 것 대신 아예 빠져 나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Gnutella를 사용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돈도 안 번다. 비록 10년 후가 된 일이지만, 제일 유명한 Gnutella 클라이언트인 LimeWire는 여전히 5천만 명의 사용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프랭클의 말이다. "제가 Gnutella를 작성했을 때 Gnutella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무엇이 가능한가를 그대로 보여주었죠. 그걸로 돈을 벌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아예 관계를 끊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개념만이 아닙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시로 이주한 프랭클은 현재 Cockos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오디오-제작 패키지인 Reaper를 만드는 곳이며, 그가 직접 Reaper를 개선하고, 고객들과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수 백만 명보다는 수 만 명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얼마나 크게 자라느냐, 혹은 출구전략이 있느냐, 그런 건 기준이 없습니다. 과정을 즐기고 바르게 처신하면 되죠." 그는, 2004년Rolling Stone 지의 언급처럼, 자신이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긱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불법복제(piracy)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어느 정도로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는 사업모델들이 나오겠죠. 저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불법복제는 어느 정도 있습니다. Gnutella는 이제 옛날 이야기에요. 디지탈 복제(digital piracy)가 음악 산업을 무너뜨렸나요? 아니죠. 음반업계가 채택을 해야 하나요? 당연합니다. 그게 더 낫다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수준 높은 더 작은 밴드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거예요."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유행성 음악에 큰 사업이 관여하는 한 고난을 받을까요? 뭐, 그러기를 바랍니다."

Four-Eyed Monsters

네 명의 청년 중 브램 코헨은 10년 전 시작했던 프로젝트를 지금도 하고 있는 유일한 청년이다. 그는 BitTorrent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이다. BitTorrent는 이제 놀라울정도로 효율적인 콘텐트-배포 기술을 상용으로 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존경받는 샌프란시스코의 회사가 되었다.

궁금해진다. 여전히 불법복제로 널리 쓰이는 기술을 가지고 합법적인 사업을 벌인다? 비록 BitTorrent를 8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BitTorrent는 여전히 신생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BitTorrent 중 합법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 연구에 따르면 11%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 적은 규모가 BitTorrent의 소득을 만들어주고 있다.

패닝이 Snocap으로 했던 것처럼 코헨 또한 자신이 만든 것을 가지고 대량 복제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합법세계로의 진입을 위해서이다. 2007년은 놀라운 발전을 보여 준 해였다. BitTorrent가 20th Century Fox, Paramount, Warner Bros. MGM 등과 함께 영화와 텔레비전 쇼, 비디오 게임의 구입과 대여를 제공하는 Torrent Entertainment Network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패닝처럼 코헨도 불법복제 사업에서 빠져나오기가, 진입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다. "모든 것이 재앙입니다. 재앙." Torrent Entertainment Network는 2008년 말에 문을 닫았다. 어째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인 사용자들이 쓰기에 BitTorrent는 여전히 사용자-친화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나 효율적인 기술이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널리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을 붙이려면 스트림 속도를 낮추고, 추적을 한 다음, DRM같은 우아하지 못한 기술을 사용하여 통제해야한다. 사용자들이 구매품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제한시키는 꼴이다. 코헨은 유감스러워 한다.

"실패로부터 굉장히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는 널리 배포하는 것을 원하는 이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그의 말이다. "메이저급 콘텐트 소유주들과 협력하여 우리 채널을 그들에게 특권으로 주는 대신, 커다란 단일 채널을 갖기고, 보다 개방적인 방식으로 정말 흥미를 가진 사람들하고만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흥미를 보인 곳은 "네 눈의 괴물들(Four Eyed Monsters)"이라는 독립영화의 제작사와, 현재까지 단 한 편만 찍은 Pioneer One이라는 독립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사들이며, 몇 군데 더 있다고 하지만 좌절스러운 관심도이다. 코드짜는 사람들이 꿈꾸는 기술 성공을 구가하였지만, 거물들은 끼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신경을 써야 할까? 전설의 코더로서 코헨은 어느 곳에서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의 스타일이 그렇지가 않다. 어느 정도 이상의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는 중이다. 파일이 아니라, 리얼타임 데이터 스트리밍용으로 디자인한 P2P 시스템이다. 생방송이나 뉴스, 운동경기를 네트워크 상으로 배포할 잠재성이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그는 여전히 BitTorrent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을 많이 투입하지는 않고 있다. "처음 만들었을 때 제대로 했거든요."

The Easy Way Out

그렇다면 지난날 불법복제로 인한 세상의 멸망은 어떻게 된 것일까? 미국 내 불법복제는 생각만큼 콘텐트 생산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지난 4월에 나온 연방회계감사원(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복제와 매출감소가 강력한 관련성을 갖고는 있지만, 결과가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나왔다.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해적 왕들이 해적일 때보다 합법 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뛰어난 코드와 무정부적인 세계관이 합법거래의 세상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좋은 코드는 선택을 부여하지만, 그만큼 권한을 받은 사용자들이 사업에도 좋지는 않다. 합법 거래에서 히트를 정말 크게 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용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한시키는 권위주의적 감각(authoritarian sensibility)이다. 

미디어 붕괴가 일어나지 않은 중대한 이유를 찾아보자. 스티브 잡스가 있다. 2003년 4월 28일, 본지가 파일공유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대한 훌륭한 기사를 하나 내보낸 바로 그 날 애플이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선보였다. 당시 아이튠스가 Snocap 등 여러 서비스가 실패한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어떻게 공짜와 경쟁하려고?

그러나 아이튠스는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은 간단하고 매력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계속 강조하며, 음반사와의 협상을 틀어쥐고 있는 잡스의 힘이 여기에 가세하여 깔끔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별 호들갑 없이 음악을 쉽게 다운로드하고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온 것이다. 물론 유료이고, DRM에 묶여 있기는 해도, 아이튠스는 성공하였다.

공짜와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쉬우면 된다. 냅스터와 Gnutella, BitTorrent는 애플만큼 사용자-친화성을 결코 이루지 못하였고, 아무도 파일공유 네트워크에 대해 통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유 규모 자체는 거대하지만 파일은 광고와 포르노, 스파이웨어와 다른 쓰레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잡스는 우리에게 쉬운 길을 터 주었다. 자유라는 것이 적어도 디지탈 미디어에서는 과대평가받았다는 사실이다. 

해적왕들 중 제일 젊었던 요한센에게는 정말 큰 교훈이다. 패닝과 프랭클, 코헨처럼 욘 레크 요한센은 절대로 해적이 아니었다. 헐리우드를 쳐부수기 위해서 DVD 보호장치를 크랙하지도 않았다. 자기 컴퓨터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서 했을 뿐이다. 그의 컴퓨터는 리눅스 운영체제로 돌아갔고, 1999년에는 리눅스용 DVD-재생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 그의 파트너들은 리눅스용으로 하나 만들어 보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DVD 암호를 해독해야 했었다.

미국 영화협회(MPAA)가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협회측은 노르웨이 정부측에 항의를 하였고, 노르웨이 정부는 요한센을 체포하였다. 그는 해킹 혐의로 두 번이나 법정에 섰다. 두 번 다 무죄를 선고받았고, 구입한 DVD의 해제를 푸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요한센은 구입한 디지탈 미디어로 무엇이건 할 수 있는 권리가, 실제 책을 구입하는 경우와 같다고 보았다. 계속 사용하든가 빌려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2005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요한센은 애플이 미디어 파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DRM 소프트웨어인 FairPlay를 리버스엔지니어링하였다. 그 때 그는 애플의 사용자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깨닫고, 보다 혼란스럽고 광범위한 비-애플 제품에도 들여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는 26세의 나이가 코더로서 좋은 대변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의 말이다. "수많은 기기들이 있었지만, 기대대로 작동하는 것은 한 대도 없었죠. 그래서 이들 기기들이 상호운용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훌륭한 미디어 경험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요한센은 2007년, doubleTwist라는 회사를 창립하였다. 무료인 doubleTwist 소프트웨어는 디지탈-미디어 파일의 로제타석(石)같은 존재이다. 500여 가지 기기의 파일을 번역하고 조직하며, 이들을 하나의 우아한 인터페이스로 합칠 수 있게 해 준다. 6월달, doubleTwist는 안드로이드용 앱을 발표하였고, 50만 명 정도가 doubleTwist를 다운로드받았다. 지난 해, doubleTwist는 이런 광고를 올릴 정도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The Cure for iPhone Envy. Your iTunes library on any device. In seconds." doubleTwist는 이 광고를 샌프란시스코 애플스토어 빌딩의 옆에 붙이기도 하였다.

요한센은 자신이 불법복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한,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전 공정사용을 지지해요. 합법적으로 얻은 콘텐트라면, 자기 기기에서 어느 애플리케이션을 쓰건 간에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다른 해적왕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센은, 좋은 코드를 작성해야 하고, 코드가 좋으면 사용자에게 힘을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불법복제로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다. 불법복제는 음악과 영화 등 모든 것들이, 적어도 금전적인 의미에서 무료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유 안에서 자유롭게(free)되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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